과연 크라우드펀딩 후원자는 호구인 걸까?

과연 크라우드펀딩 후원자는 호구인 걸까?
이미지 출처 klimkin

다만 내가 어떤 사고의 흐름으로 크라우드펀딩을 택했는지는 설명할 수 있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이놈은 어떤 생각을 했나 들어나보고 마음대로 정하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

ZZOM의 첫 책 '처음 배우는 그래픽 레코딩'을 크라우드펀딩 하면서 고민했던 내용을 정리합니다.
본 프로젝트는 달성율 260%, 777명의 후원자와 함께 무사히 마감했습니다.
펀딩 종료 후의 진행 과정이나 전자책 출간 소식은 아래 경로로 공유할 예정입니다.


프롤로그

크라우드펀딩에서 후원하기 vs. 일반 서점에서 구입하기

1인 출판 프로젝트를 하다 보니 여러 가지 고민거리가 많았다. 그 중 하나가 첫 책을 크라우드펀딩으로 세상에 선보일지, 일반 서점에 바로 내놓을지 결정하는 거였다. 펀딩 하냐 안하냐에 정답은 없다. 다만 내가 어떤 사고의 흐름으로 크라우드펀딩을 택했는지는 설명할 수 있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이놈은 어떤 생각을 했나 들어나보고 마음대로 정하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

그럼 1인 출판프로젝트 ZZOM의 첫 책, ‘처음 배우는 그래픽 레코딩’를 크라우드펀딩 하기끼지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풀어보자.

크라우드펀딩은 쇼핑과 다르다

크라우드펀딩은 쇼핑보다 매력적이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가 아니라 창작자와 후원자의 사이에서 드라마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 생산자는 판매하고, 소비자는 구매한다.
  • 창작자는 도전하고, 후원자는 응원한다.

최종 결과물을 받아보고 만족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만끽한다. 이건 마치 소년 만화의 성장 스토리와도 비슷하다. 꿈은 많지만 서툰 주인공이 있고, 그를 도우려는 사람이 있고, 목표를 방해하는 환경이 있다. 가끔은 작은 성공에 기뻐하기도 하고, 가끔은 더딘 진행에 고구마를 먹기도 한다. 기대한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해도 그 과정에 의미를 두고 다음 도전을 기약하기도 한다. 크라우드펀딩이 딱 그렇다.

왜 크라우드펀딩인가?

‘처음 배우는 그래픽 레코딩’은 처음부터 크라우드펀딩을 할 생각이었다. 원서 자체는 현지에서 큰 인기였지만 국내에는 ‘그래픽 레코딩’이라는 용어 자체도 알려지지 않았고, 역자가 내노라하는 인플루언서도 아니었던 시장에 책을 바로 놓기엔 위험 부담이 있었다.

사실 애당초 시장성이 있을 만한 책은 이미 메이저 출판사가 잘 내고 있다. 그런 책은 고맙게 사서 보면 되지 굳이 1인 출판 프로젝트로 힘들게 책을 만들 이유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많이 찾진 않지만 내가 보고 싶은 책, 하지만 남도 보면 좋은 책을 공유하고 싶었고, 적은 양을 찍어서 함께 보기엔 크라우드펀딩이 딱 맞았다.

크라우드펀딩의 차별화, 어디에 둘 것인가

크라우드펀딩을 결정한 건 좋다. 하지만 일반 서점에서 책을 사는 것과는 분명한 차별성이 있어야 한다. 크라우드펀딩 후원자는 실물도 못 본 상태에서 가챠에 동전을 넣은 격이다. 펀딩의 리스크를 기대감과 스릴, 누군가를 도왔다는 즐거움으로 보상할 수 있다지만 그건 그런 위험조차 겪지 않은 서점 구매자를 보기 전의 이야기다. 상대적인 박탈감은 먼 곳에서 오지 않는다.

  • 가챠: 아이들이 동전을 넣고 캡슐에 든 장난감을 무작위로 뽑는 기계

크라우드펀딩을 하기로 했다면 바로 이런 상대적 박탈감을 최소화하고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 그렇다면 상대적 박탈감을 만들 수 있는 요소는 무엇일까? 우선 모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살 때의 조건을 보자.

  1. 도서 정가에서 10% 할인
  2. 도서 정가에서 5% 기본 적립
  3. 일정 금액 이상 구매 시 배송료 면제
  4. 일정 금액 이상 구매 시 추가 적립
  5. 리뷰 작성 시 추가 적립
  6. 기타 이벤트성 증정품

강력하다. 너무 강력하다. 여기서 1번과 2번은 도서 정가제의 제약 범위에 들어간다. 3번 이후는 서점 플랫폼이 제공하는 혜택이다. 플랫폼의 강자답게 첫 스테이지부터 최종 보스가 등장한 셈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조건은 이기지 못한다. 크라우드펀딩을 한다는 자체가 수요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핸디캡을 이미 가진 셈인데, 애당초 노는 물과 체급이 다르다. (사실 10%보다 더 할인하는 곳이 있긴 한데 특정 조건을 만족하는 소상공인 대상이라 논외로 함)

아이러니하게도 크라우드펀딩이 끝난 책은 일반 서점에도 유통된다. 즉 위 조건이 미래의 일반 서점 독자에겐 혜택으로 돌아간단 말이다. 그리고 그 혜택은 실물을 보지 못하고 블라인드 펀딩 하는 후원자에겐 상대적으로 불만 요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크라우드펀딩 후원자와 일반 서점 이용자는 참여 시기만 다를 뿐 둘 다 엄연히 책을 읽는 독자다. 어느 한 쪽에 소홀할 순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두 집단의 특징을 살펴보자.

크라우드펀딩 후원자

  • 장점: 남들보다 먼저 받는다
  • 단점: 실물을 확인하지 못한다
  • 얻는 것: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시간과 가치를 얻는다

일반 서점 이용자

  • 장점: 실물을 확인할 수 있다
  • 단점: 남들보다 나중에 받는다
  • 얻는 것: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혜택을 얻는다

자, 답이 나왔다. 일반 서점 이용자가 ‘금전적인 혜택’을 누린다면, 크라우드펀딩 후원자는 ‘시간’과 ‘가치’를 얻으면 된다.

남들보다 먼저 받는다는 말은 시간을 산다는 의미다.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없다지만, 최저 시급의 개념을 가져오면 1시간에 9,160원으로 남의 시간을 사는 셈이다. ‘가치’는 사람마다 체감하는 정도가 달라 객관적인 금액으로 환산은 어렵지만, 그 경험을 하는 데 얼마를 줄 수 있나 생각하면 주관적이지만 가늠할 수 있다. 즉 시간과 가치는 ‘경험’이란 형태로 바꿀 수 있다.

결국 금전적인 혜택을 시간과 가치로 얼마나 상쇄시킬 수 있는가와 양쪽의 균형을 얼마나 잘 유지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그런 균형을 만드는 게 창작자이자 판매자가 할 일이다. ‘뭘 좋아하는지 몰라 모두 준비했어’ 창작자는 독자에게 후원자가 될지, 구매자가 될지 판단할 수 있게 판을 깔아줘야 한다. 크라우드펀딩을 할지, 일반 서점에서 구매할지는 독자의 몫이다.

지켜야 하는 건 도서 정가제

자 그럼 양쪽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금전적인 갭부터 최소화해보자. 앞에서 살펴본 모 서점의 혜택을 다시 보면 이러하다.

  • 1 도서 정가에서 10% 할인
  • 2 도서 정가에서 5% 기본 적립
  • 3 일정 금액 이상 구매 시 배송료 면제 (배송료 2,000원)
  • 4 일정 금액 이상 구매 시 추가 적립 2~4%
  • 5 리뷰 작성 시 추가 적립 300원~600원
  • 6 기타 이벤트성 증정품, 우수 리뷰 선정 시 상품권

여기서 1, 2번은 ‘도서 정가제’를 따르며 10%의 할인, 5%의 경품 혹은 마일리지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단, ‘적립’은 크라우드펀딩에선 쓸 수 없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에는 ‘적립’이란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3번은 규모의 경제가 개입하는데 대형 서점이나 2,000원에 배송할 수 있지 소규모 사업자는 통상 2500원 정도의 배송료가 든다. 6번은 일반 서점이냐 크라우드펀딩이냐와 상관없이 마케팅 이벤트라는 공통 영역이므로 논외로 한다.

‘처음 배우는 그래픽 레코딩’의 정가가 17,000원이라고 할 때 위 혜택은 다음과 같이 환산할 수 있다.

  • 1 할인: 1,700원
  • 2 경품 혹은 적립: 850원
  • 3 일정 금액 이상 구매 시 배송료 면제: 2,500원
  • 4 일정 금액 이상 구매 시 추가 적립: 34원~68원
  • 5 리뷰 작성 시 추가 적립: 300원~600원

1번은 크라우드펀딩에서도 할인하면 되므로 제외하고, 2번은 크라우드펀딩의 굿즈로 제공하면 되니 제외한다. 그러면 3, 4, 5번이 남는데 모두 합산하면 대충 3,200원이 나온다.

참고로 3,200원의 가치는 택시비 기본요금, 스타벅스에서 가장 저렴한 오늘의 커피 한 잔 가격보다 싸고, 음식 배달료보다 비싸다.

결국 크라우드펀딩이 제공하는 ‘시간’과 ‘가치’가 스타벅스 커피 한 잔보다 좋아 보이면 되고, 반대로 커피 한 잔을 사주더라도 쉽게 얻지 못하는 ‘경험’이면 되는 것이다.

시간을 어떻게 줄 것인가

우선 시간의 가치를 어떻게 줄까? 앞서 최저 시급이 9,160원이니 이론상 1만원이면 타인의 시간을 1시간 살 수 있다. 신선 식품은 유통 기한이 다가올수록 10%, 20%, 30%, … 점점 할인하다 결국엔 폐기된다. 그렇다고 책을 사람의 용역으로, 신선 식품으로 보긴 어렵다. 그래서 놓은 기준은 커피 한 잔과 배달비다.

  • 누가 1주일 먼저 책을 갖다주면 커피 한 잔 정도는 사줄 수 있지 않을까?
  • 누가 1주일 먼저 책을 갖다주면 배달비 정도는 줄 수 있지 않을까?

퀵 서비스, 당일 배송, 익일 배송의 가치를 얼마로 환산할진 모르지만, 최소 1주일의 갭이라면 아주 납득하기 어려운 건 아니다. 이때 주의할 점은 크라우드펀딩으로 최소 1주일 먼저 책을 보내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아주 방법이 없는 걸까? 아니다. 일반 서점에 1주일 늦게 출간하면 된다. 시간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가치를 어떻게 줄 것인가

1주일 먼저 받는 대가로 3,200원의 금전적 가치가 상쇄되었을까? 아니다. 시간이 상대적인 것처럼 사람이 느끼는 만족도도 상대적이다. 마음이 급한 사람은 3,200원의 급행료가 싸다고 느끼겠지만, 여유 있는 사람은 굳이 빨리 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사람에겐 다른 가치를 줘야 한다. 그게 과연 뭘까?

수고로움을 덜어서 독자의 불편함을 해결하기

‘처음 배우는 그래픽 레코딩’은 빠르고 간단하게 강연이나 회의를 기록하는 작화법에 관한 책이다. 그래서 글로 익힌 후엔 실습이 따라야 한다. 그래픽 레코딩은 보통 큰 모조지에 마카로 그린다. 마카는 일반 필기구와 달라서 일반 가정에는 잘 없고, 미술용품을 취급하는 문구점에 가야 살 수 있다. 개당 가격도 제법 비싼 편이다.

책을 읽어보니 당장 그리고 싶은데 마카가 없다면? 온라인에서 주문하는데 배송료가 부담된다면? 문구점에 다녀오는 동안 열정이 식는다면? 그래서 책이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한다면? 그런 질문에서 답을 하나 찾았다. 의욕이 있을 때 바로 그릴 수 있어야 한다. 그래, 책과 함께 마카를 보내는 거야! 그런 결론에 이르렀다.

마카의 소매 가격은 3,500원 정도, 인터넷 최저가로는 2,300원 안팎에 배송료가 2,500원이다. (더 저렴한 게 검색되나 이전 모델이었음) 그래픽 레코딩에 사용할 마카를 검정색, 강조 색, 보조 색으로 최소 3개를 구입한다면 일반 미술용품 문구점에서는 10,500원, 온라인에서는 택배비 포함 9,400원이 든다.

‘처음 배우는 그래픽 레코딩’ 크라우드펀딩에서는 후원자가 별도로 마카를 준비하는 수고를 덜도록 책과 함께 동봉하되 7,000원의 추가금을 부담하게 했다. 책은 크라우드펀딩이지만 추가 구성품은 공동구매의 기능을 한다. 책과 함께 동봉하니 택배비는 따로 들지 않는다. 결국 개인이 온라인 최저가로 구매하는 것보다 2,400원 절약되는 셈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게 ‘[얼리버드] B 세트 기본팩’, ‘B 세트 기본팩’, ‘B 세트 스터디팩’이다.

단, 마카의 도매가격이 인상되거나, 불량으로 반품이 생기면 7,000원의 추가금이 부족할 수 있다. 이 리스크는 창작자가 부담한다. 왜냐하면 후원자는 실물조차 보지 못한 상태에서 더 큰 위험을 감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추가 구성품을 대량 구매하고 책과 함께 동봉하는 건 굳이 최저 시급 9,160원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무척이나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다. 하지만 후원자가 책을 보고 바로 그리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면 그 정도 수고는 아무것도 아니다. 시간의 관점에서 보자면 나의 시간과 품삯이 독자의 즐거움으로 변환되는 셈이다.

서점에선 살 수 없는 한정판 비매품을

10% 책값 할인도 했고, 적어도 1주일 먼저 책을 보내주고, 마카도 대신 사서 동봉해주는데 이만하면 되지 않았냐 싶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아직 할 수 있는 게 있다. 바로 서점에서는 살 수 없는 비매품 워크북을 넣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처음 배우는 그래픽 레코딩’은 그림을 그리기 위한 작법서다. 책은 보기 편하고 그리는 법도 쉽지만 그렇다고 독자가 바로 그린다는 보장은 없다. 마카도 쥐어줬지만 마카를 주문하지 않은 사람도 있을 테고, 종이가 없다며 게으름을 부리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아날로그로 그리는 사람도, 디지털로 그리는 사람도 언제나 가볍게 연습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초등학생도 따라 할 수 있는 실습용 워크북을 준비했다.

워크북의 내용은 책의 부록에 나오는 내용으로 ‘Appendix A 비주얼 라이브러리’에 있는 그림을 별책 부록으로 따로 구성했다. 사실 비주얼 라이브러리는 안내된 URL에서 다운로드받아 프린터로 뽑을 수 있다. 하지만 컴퓨터 켜고, 다운로드받고, 프린트 출력하고, 따라 그리기는 과정조차 줄여주고 싶은 마음에 아예 워크북을 만들어 책과 함께 동봉하기로 했다. 책과 같은 사이즈인 A5 포맷이라 마카로 따라 그리긴 작은 편이지만, 가정이나 사무실에 하나쯤 있는 수성펜만 있으면 무리 없이 그릴 수 있게 만들었다. 사실 이런 구성은 원서에도 없던 거라 저자를 설득해서 비매품으로 제공하는 걸 따로 승낙받았다.

워크북은 흑백 1도 인쇄에 중철 제본, 40페이지 분량이다. 통상 A5 학생 노트 40매가 온라인 최저가 860원 안팎인데 이건 다시 펼쳐보지 않는 일회성 연습장이다. 그래서 가능한 범위에서 제작 사양을 낮췄다. 제작비의 부담은 있지만, 애당초 이번 프로젝트가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건 아닌지라 독자가 책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쪽에 가치를 두기로 했다.

사실 후원자에게 자녀가 있다면 자녀와 함께 책을 보며 워크북을 그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그리는 계기가 된다면 머릿속의 생각을 전달한다는 이 책의 취지도 잘 살리는 셈이렷다. 어쩌면 아이가 더 잘 그릴 거란 생각을 하니 워크북을 준비하는 과정도 힘들지 않았다.

프로젝트 기여에 대한 감사를 표시

여기까지 보면 나름 애를 쓴 것 같지만 아직도 아쉬움이 남을 수 있다. 아날로그 방식이 아니라 디지털 방식으로 그릴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아이패드나 갤럭시 탭, 그 밖의 태블릿으로 그릴 사람은 마카가 필요없다. 어쩌면 워크북도 파일을 다운받아 이미지를 import해서 그릴지도 모른다. 디지털 드로잉을 할 사람은 보통 ‘[얼리버드] A 세트 기본팩’, ‘A 세트 기본팩’, ‘A 세트 스터디팩’을 고르게 된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치는 뭐가 더 있을까?

앞서 분석한 대로 크라우드펀딩과 일반 서점 간의 금전적인 혜택 차이는 3,200원 정도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을 금액이지만 크라우드펀딩 후원자가 일반 서점 구매자에 비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소지가 있다. 책을 남보다 먼저 받아보는 것도, 동봉한 마카로도 혜택 차이를 줄일 수 없다면? 그런 독자를 위해 마지막 관문을 하나 더 준비했다. 바로 도움 주신 후원자의 이름을 책에 남겨드리는 것이다.

어쩌면 흔할 수 있는, 제3자가 보았을 때는 아무런 감흥도 없는 이름의 나열일 수 있겠지만, 작품이 끝난 뒤에도 마지막 여운을 느낄 수 있도록 영화 엔드 크레딧처럼 이름을 남기기로 했다. 후원자의 이름은 전체 248페이지 중 2페이지에 걸쳐 등재된다. 책 내용 중 124분의 1에 후원자의 공간을 마련한 셈이다.

사실 1인 출판 프로젝트로 직접 책을 찍어야 겠다고 결심한 데는 영화 같은 엔드 크레딧을 넣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왜냐하면 다른 출판사에선 이렇게 해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쇄소에서 검정 잉크 많이 든다고 싫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부탁해서라도 꼭 만들어 넣을 것이다.

다른 출판사의 번역자일 때는 할 수 없었던 일, 이걸 해내려고 힘들게 출판사를 차렸다.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내가 보니 좋았고, 남도 보면 좋은 책을 내고 싶었다. 그런 내 생각에 공감한 사람이 있었고, 후원이란 이름으로 내 곁에 서 주었다.

이제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읊을 것이다. 내게 허락된 지면이 있는 한, 누가 내게 힘을 주었는지 새겨 넣을 것이다. 나를 만난 적도 없으면서, 내 얼굴도 모르면서 후원해준 사람들, 엔드 크레딧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경험인 것이다.

에필로그

‘크라우드펀딩 하는 것보다 일반 서점에서 사는 게 유리한 거 아냐?’ 그런 질문에서 시작된 고민은 어느 정도 답을 찾은 것 같다. 일반 서점이 가격면에서 유리하다면 크라우드펀딩은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시간과 가치로 차별화하면 된다. 그 시간과 가치가 모든 사람에게 만족스럽진 않겠지만 리스크를 감내한 후원자를 위해 할 수 있는 데까진 해보는 게 창작자로서의 최소한의 도리다.

처음엔 가볍게 생각했던 1인 출판 프로젝트지만 펀딩 목표 260%를 달성하고 보니 더 진지하게 임해야 겠다는 각오를 해본다. 후원자는 책의 내용도 궁금했겠지만 아무것도 없던 내게 기회를 준 사람이다.

쫌 더 욕심내자. 쫌 더 잘 만들어보자.
그래서 쫌 더 많은 사람이 함께 성장하면 좋겠다.

1인 출판 프로젝트 ZZ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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