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 세상의 중심에서 나를 외치다 (2)

트랜스젠더, 세상의 중심에서 나를 외치다 (2)

취업을 준비하던 중 트랜스젠더 모델로 기획사에 들어갔다. 세상 사람이 트랜스젠더라는 존재를 올바르게 이해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원문에 대하여

원문은 일본의 성 소수자 관련 미디어 LGBTER에 게재된 내용 중 나카가와 미유님의 인터뷰입니다.
한국어 번역 및 온라인 게시에 관해 LGBTER와 미유님의 동의를 얻은 후 공유합니다. 단, 번역 결과에 대한 내용 검증은 일본 측에서 판단하기 어려운 관계로 오역에 대한 책임은 번역자인 제게 있습니다. 주요 키워드는 가능한 한 원서에 충실하게 차용했고, 설명이나 참고 자료가 필요한 부분은 '옮긴이 도움말'의 주석으로 따로 빼두었습니다. 민감한 내용일 수 있는 만큼 주의해서 번역했습니다만 용어나 표현에 잘못된 내용이 있다면 피드백 부탁드립니다.

현지화 고려사항
  • 맥락에 큰 영향이 없는 범위에서 첨언이나 생략, 의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 미유님의 대화에서 나타나는 효고현 사투리는 표준어로 순화했습니다.
  • 각종 용어는 한국에서 쓰는 표현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원문 정보

트랜스젠더에 대한 인식을 높이려

면접에선 일찌감치 커밍아웃

지금은 대학교 4학년, 내년 봄에 취업하기 위해 면접에 힘을 쏟는 시기다.

“원래는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어요.”
“지금은 패션 기획을 공부하고 있어요.”
“상품 말고도 이벤트나 잡지를 기획하는데 재밌거든요.”

올봄엔 수술도 잘 끝났고 호적도 수정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여성’으로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
단, 면접을 볼 때는 내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반드시 밝힌다.

“지금은 여자지만 전엔 남자였다는 걸 알리고 있어요.”
“괜히 숨겼다가 나중에 들킬까 봐 마음 졸이긴 싫거든요.”

“지금까진 다행스럽게도 주위에서 이해해줬어요.”
“하지만 숨겼다가 알려지면 비난받을 것 같았거든요.”
“불안하게 사느니 먼저 커밍아웃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막상 밝히고 나면 반응은 의외에요.”
“‘우와, 그래요?’ 그 정도예요.”

“놀라긴 하지만 경멸하거나 비난하는 느낌은 아니에요.”
“LGBT에 대한 이해가 조금씩 높아지는 걸 느끼고 있어요.”

게이와 트랜스젠더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회

취업을 준비하던 중 트랜스젠더 모델로 기획사에 들어갔다.
세상 사람이 트랜스젠더라는 존재를 올바르게 이해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소속사에서는 호적도 여성이고 목소리도 높으니 여성으로 활동하는 게 좋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제가 해야 할 일은 여성 모델 말고도 더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미디어에 나간다면 트랜스젠더로 소개되길 원했어요.”
“TV에선 여전히 게이와 트랜스젠더를 구분하지 않고 ‘오네에’로 통칭하거든요.”
“아직까진 사회에선 폭넓게 이해받지 못한 상태란 거죠.”

사실 트랜스젠더로 활동할 수 있는 직군은 많지 않다. 하지만 사회의 인식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할 수 있다면, 작은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나를 앞세워서 알리고 싶다. 그 생각은 어릴 때나 지금이나 결코 변한 적이 없다.


남자로 태어났다는 기억

비로소 나의 진짜 모습을 찾다

한 사람의 여성으로 사회에 나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졸업 전에 수술해야 했다.
수술비는 아르바이트로 가까스로 모았다.
그리고 대학교 3학년, 봄 방학 때가 되어서야 성별 적합 수술을 받았다.

“제 모습을 찾은 것 같았어요.”
“애당초 여자로 태어났어야 할 존재라고 생각했거든요.”
“뭔가 착오가 있어서 남자 성기가 붙어 나왔을 뿐이랄까…“
“이제야 진짜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아 다행스러웠어요.”

대학생 때 치료를 받는 동안에는 옷차림은 여자지만 호적이 남자라 오해를 사는 일도 많았다.

“의료보험증에는 성별이 남성이거든요.”
“병원에서 본인이 맞냐고 확인하는 일이 종종 있었어요.”
“매번 설명하는 것도 그래서 중간에 관둘까 생각한 적도 있어요.”

“어렵게 설명하고 나면 경멸하는 눈빛으로 보는 사람도 있었거든요.”
“이젠 당당하게 여성으로 살 수 있어 얼마나 마음 편한지 몰라요.”

남자였던 사실을 영화에 기록하다

반면 깨닫는 것도 있었다.

“내가 남자였던 사실만은 지울 수가 없었어요.”
“어차피 잊지 못할 기억이라면 차라리 영화에 남기자는 생각을 했어요.”
“20년쯤 지난 후에 이런 일도 있었다며 웃으면서 말할 수 있었었으면 했어요.”

그래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자고 마음먹었다.
감독은 타나카 유키오(田中幸夫) 감독.
복장도착(服装倒錯)과 SM 같은 성적 취향이 다앙햔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겨울나비도감(凍蝶圖鑑)‘의 감독이다.

타나카 감독과는 지인의 소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영화를 찍자고 제안한 건 미유씨였다.

“처음엔 감독도, 가족도 반대했어요.”

영화를 찍으면 많은 사람이 보게 될 테니 찬성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반대하는 사람도 생길 것이다. 모두가 따듯한 마음으로 봐줄 리가 없다. 손가락질당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걸 다 감당할 수 있을까?

“하지만 아무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잖아요.”
“TV의 영향도 있겠지만 MTF에 대한 인식은 뉴 하프나 밤업소의 느낌이 강했거든요.”
“그린 인식을 바꾸고 싶었어요.”
“원래 남자였지만 한 사람의 여자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어요.”
“그리고 저는 일반인이었기 때문에 연예인보다 더 사실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내가 바꿔야 해! 그런 사명이 있었죠.”

그렇게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영화 『여자가 되다』는 2017년 가을 전국 개봉한다.

옮긴이 도움말

다큐멘터리 영화 『女になる』는 2017년 10월 28일에 공개되었다.


MTF(male to female)니까 할 수 있는 일

용기를 내어 모두 털어놓다

“같이 출연했던 대학 후배가 이번 촬영을 계기로 부모님께 커밍아웃했다더군요.”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아요.”
“부모님도 처음엔 당황스러웠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받아들인 모양이에요.”

지금은 이런 작은 변화들이 너무 소중하다.

“MTF로써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나 항상 생각합니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은 이유도 그런 맥락이에요.”

“저는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준 터라 비교적 다행스러운 경우라 생각해요.”
“하지만 그런 조건에서조차 나 자신을 드러낼 때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어요.”

“지금 같은 고민을 하는 분이 있다면 자신감을 가지고 주변에 한 발 더 다가서란 말을 하고 싶어요.”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이 분명 있을 거예요.”

그리고 덧붙여서 말했다.

“절대 자신을 탓하지 마세요.”
“그런 제 마음이 영화를 통해서 전달되면 좋겠습니다.”

당당하게 사는 모습에 용기를 얻다

영화 상영 전부터 ‘용기가 생겼다’,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있었다.
이제까지의 LGBT 관련 영화는 당사자의 힘든 모습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여자가 되다』는 시작부터 끝까지 밝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마냥 밝기만 한 영화는 아니다. 그 속에는 아픈 기억을 딛고 서서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이 용기를 얻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성 소수자 뿐만 아니라 스트레이트(straight)인 분도 함께 봐주시면 좋겠어요.”

영화를 본 이성애자 중에서는 남성보다 여성 쪽이 호의적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원래는 남자였다고 이야기하면 여성 쪽에서 더 친근하게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같아요.”

성별이 무엇이든 상대의 섹슈얼리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사회가 어서 오길 바라본다.

옮긴이 도움말
  • 스트레이트(straight): 이성애자. 헤테로(hetero)라고도 한다.

성 소수자끼리니까 공감할 수 있다

친구는 ‘내가 열심히 살아온 증거’

“자신보다 남을 더 생각하는 멋진 사람이 있어요.”

2017년4월부터 교제해온 파트너가 있다.
사실 그는 FTM(female to male), 즉 원래는 여자였다.

“1월에 열린 LGBT 세미나에서 처음 만났어요.”
“저보다 4살 많았는데 SNS를 통해서 식사를 같이하자고 제가 먼저 청했어요”.

그 후로도 몇 번인가 드라이브하거나 식사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사귀게 되었다.

“그이가 부끄럼이 좀 많아요.”
“사귀자는 말도 직접 만나서 하지 못하고 라인(LINE)으로 보내줬어요. (웃음)
“다시 한번 제대로 말로 하라고 제가 전화해서 따졌어요.”

그때 그가 한 말은 이러했다.

“우리 둘 다 성 소수자니까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힘든 일도 함께 극복할 수 있을 것 같고…“

그 말이 정말 고맙고 기뻤던 나머지, 다음에 만났을 때 다시 한번 해달라고 졸랐을 정도다.

“또 하나 좋았던 건 제가 강하다고 말해줄 때였어요.”

그리고 그는 이런 말도 했었다.

“이렇게 많은 친구가 네 곁을 지켜주고 있다는 건, 미유가 열심히 살아온 증거일 거야.”

옮긴이 도움말

두 분의 인터뷰 영상

수술의 부담감을 온몸으로 느끼다

평온한 나날을 보내던 중, 성 소수자라서 마음을 졸여야 했던 일도 있었다.

“사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어요.”
“그가 성별 적합 수술 후에 합병증으로 장폐색이 왔거든요.”
“그것도 두 번째 입원이었던지라…“

“저는 부작용이나 합병증이 없어 비교적 건강하지만…“
“그가 입원하는 걸 보니 역시 수술은 몸에 많은 부담을 준다는 걸 실감하게 되었어요.”

“우리는 스트레이트와는 다른 인생을 살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물론 그런 위험을 각오하고 수술을 했습니다.”
“인생은 한 번뿐이거든요.”

둘은 2017년 10월 17일, 오사카에서 열리는 ‘RAINBOW FEST! 2017’에서 평등 결혼식의 모델로 출연하게 되었다.
주위 사람들의 많은 추천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많은 분이 응원해줘서 정말 기뻤어요.”
“출연이 결정된 후, 모두에게 ‘축하합니다’란 말을 들었을 땐 깜짝 놀랐어요.”
“아직 결혼한 건 아니잖아요. (웃음)

“저는 아직 학생이고, 취업도 해야 하니 결혼은 아직 생각할 겨를이 없어요.”
“사회 경험을 더 한 후에 천천히 생각해보려고요.”

힘들 때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징그러워, 저리 가

이제까지 살면서 가장 힘든 시기는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할 때였다.
손님에게 갖은 모욕을 듣는 때가 있었기 했기 때문이다.

“커밍아웃 후부터 아르바이트할 때는 가발을 썼어요.”
“그러다가 손님에게 ‘징그러워’, ‘저리 가’란 얘길 들은 적이 있어요.”
“심할 때는 취객이 제 가발을 벗기기도 했어요.”

“학교에서 힘들었던 건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이게 진짜 사회라는 걸 뼈저리게 실감했어요.”
“그래도 수술비는 모아야 한다는 생각에 어떤 설움이든 웃으면서 이겨낼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쌓인 스트레스는 쇼핑이나 노래방으로 풀었어요. (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비교적 좋은 여건에서 자랐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만난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고 있다.

“듣기 좋은 말로 들리겠지만,”
“가족도, 친구도, 학교 선생님도…“
“심지어 아르바이트에서 만난 사람까지도 모두에게 감사하고 있어요.”

후회는 없다

“그래도 가장 고마운 건 역시 엄마겠죠?”
“좌우지간 저를 낳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 무엇도 시작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성 동일성 장애를 가진 것도 원망하진 않아요.”
“누굴 탓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요.”

“다만 수술을 하면서 몸을 바꾸는 건 정말 힘들었어요.”
“그래도 덕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잖아요.”
“정말 감사해요. 저를 낳아줘서 정말 감사해요.”

내년 봄에는 한 사람의 여성으로 사회에 내디딘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과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는 제 주변에 스트레이트만 있었는데, 수술 전후로 성 소수자와 만날 기회가 많아졌어요.”
“누군가가 제게 문의하면 제대된 의견을 드릴 수 있게 준비하려 해요.”
“21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수술한 만큼, 제가 조언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을 거예요.”

“힘든 일을 겪겠지만 기죽지 말고 고개를 드세요.”
“분명 괜찮은 미래가 온다는 걸 꼭 전해주고 싶어요.”

“성(性)이란 건 정말 다양해요.”
“트랜스젠더인 저조차도 아직 모르는 게 많거든요.”
“저도 이렇게 모르는데 스트레이트인 분들은 얼마나 혼란스러울까요.”
“그렇기에 더더욱 많은 사람 곁에서 트랜스젠더에 대해 전하고 싶어요.”

인터뷰 후기

부드러운 인상에 너무나 사랑스러운 미유님은 인터뷰 내내 침착하게 응해주셨다.
힘든 이야기를 꺼내면서도 격앙되는 일 없이, 오히려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갔다.

‘이 아이가 혹시 사람을 죽인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몇 시간 동안 재촉하는 일 없이 끝까지 이야기를 들어주신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강인함이 미유님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지 상상하지 않더라도 알 수 있었다.

가족, 친구, 그리고 파트너.
사람은 사랑할 때 비로소 더 강해진다.
힘든 역경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세상과 마주할 수 있었던 건
그런 사랑의 힘 때문이었으리라.

LGBTER 편집부
번역 에필로그
미유님은 2020년 4월에 결혼식 모델을 함께 했던 히가시네 아유무님과 올해 실제로 결혼하여 단란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인터뷰를 한 지 3년 후엔 어패럴 숍의 점장이 되었습니다. 학생 때 바라던 패션 분야에서, 그것도 여성으로 사회에 나가는 꿈을 이룬 셈이죠.
그가 그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여자가 되다』는 유럽의 넷플릭스라고 할 수 있는 sooner 서비스에 오는 6월 18일 론칭됩니다. sooner는 국제영화제 상영, 수상작을 중심으로 7천 편 가랑의 영화를 제공하는 서비스로, 이번에 『여자가 되다』를 시청 할 수 있는 지역은 오스트리아, 스위스, 독일의 세 곳입니다.
이제까지 IT 기술서만 번역하다가 우연히 LGBT에 대해 알아볼 기회를 주신 '처음 배우는 그래픽 레모딩'의 저자 구보미 아사미님, 나카가와 미유님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이 한 장의 삽화에서 시작한 인터뷰 번역이었지만 앞으로도 기계의 내부뿐만 아니라, 사람의 내면도 들여다볼 수 있는 번역자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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