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 세상의 중심에서 나를 외치다 (1)

트랜스젠더, 세상의 중심에서 나를 외치다 (1)
번역 프롤로그

이 이야기는 한 장의 삽화에서 시작합니다. '처음 배우는 그래픽 레코딩'이라는 책을 번역할 때였는데 수 많은 삽화 중에서도 유독, 이 그림에 눈이 오래 멈췄습니다. 지금까지는 IT 기술과 기획, 소통에 관해서만 번역했던지라 LGBT라는 주제는 제게 무척 생소했는데요. 이런저런 자료를 찾던 중 아래 인터뷰를 알게 되었고 다른 분도 볼 수 있게 번역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특정 이슈에 관한 찬반을 논하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제 주변에 분명히 공존하는 '그'와 '그녀' 혹은 또 다른 존재에게, 실례될까 봐 말을 아끼고, 불쾌할까 다가서지 못했던, '배려'라고 착각했던 '무관심'을 반성합니다. 다른 분에게도 제 마음이 전해지도록 조심스럽게 한국어로 옮겨 봅니다.

원문에 대하여

원문은 일본의 성 소수자 관련 미디어 LGBTER에 게재된 내용 중 나카가와 미유님의 인터뷰입니다.
한국어 번역 및 온라인 게시에 관해 LGBTER와 미유님의 동의를 얻은 후 공유합니다. 단, 번역 결과에 대한 내용 검증은 일본 측에서 판단하기 어려운 관계로 오역에 대한 책임은 번역자인 제게 있습니다. 주요 키워드는 가능한 한 원서에 충실하게 차용했고, 설명이나 참고 자료가 필요한 부분은 '옮긴이 도움말'의 주석으로 따로 빼두었습니다. 민감한 내용일 수 있는 만큼 주의해서 번역했습니다만 용어나 표현에 잘못된 내용이 있다면 피드백 부탁드립니다.

현지화 고려사항
  • 맥락에 큰 영향이 없는 범위에서 첨언이나 생략, 의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 미유님의 대화에서 나타나는 효고현 사투리는 표준어로 순화했습니다.
  • 각종 용어는 한국에서 쓰는 표현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원문 정보

“제가 만났던 모든 사람에게 감사합니다.”
“모두가 따뜻한 마음으로 맞아 주신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는 것 같아요.”

부드러운 효고(兵庫) 사투리로 그녀는 말했다.
그녀가 이토록 해맑게 웃을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감사하고, 주위의 사람과 자신이 처한 어려움에 의연하고 당당하게 마주했기 때문이리라.
이번 인터뷰에서는 그녀가 오랜 시련을 딛고, 지금의 미소를 되찾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Interviewee
  • 나카가와 미유(中川 未悠, Miyu Nakagawa)
  • 1995년생 / 트랜스젠더(MTF: Male to Female) / 일본 효고현
1995년 효고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성별 불쾌감(gender dysphoria)이 있어 2017년 봄 21세에 성별 적합 수술(gender reassignment surgery)을 받았다. 수술받기까지의 과정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기록했는데 2017년 가을 『여자가 되다』라는 이름으로 개봉되었다. 패션에 관심이 많던 그녀는 고등학교에서 디자인과 의류 과정을, 대학에서 패션디자인과학을 전공했다. 2018년 봄부터는 사회인으로 발돋음할 예정이다.


옮긴이 도움말
  • 성별 불쾌감(性別不快感, gender dysphoria): 자신의 정신적인 성(gender)과 생물학적인 성(sex)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현상이다. 성별 위화감, 성 정체성 장애, 성 동일성 장애라고 불리기도 한다.
  • 성별 적합 수술: 성전환수술, 성 재지정 수술, 성별 적합 수술, 성 확정 수술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래, 나는 오카마다!

뭐야, 넌? 남자가 왜 이런 걸 쓰는 거야?

어렸을 때부터『미소녀 전사 세일러문(美少女戦士セーラームーン)』과『꼬마마법사 레미(おジャ魔女どれみ)』를 좋아했다. 여느 남자아이처럼 미니카(トミカ)로 노는 것도, 밖에서 뛰어노는 것도 좋았다. 그래서 그랬는지 유치원 때부터 남자아이와도, 여자아이와도 허물없이 사이좋게 지낼 수 있었다.

“그때는 할머니가 직접 짜준 스웨터를 입었어요.”
“남자 옷이지만 귀여운 스타일이었죠.”
“그래서 일부러 여자 옷을 입고 싶다거나, 남자 옷을 입기 싫다거나 하진 않았어요.”

하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부모님이 사준 란도셀 가방(ランドセル)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검은색이네? 빨간색이 더 좋은데…“

책가방은 물론이고 다른 학용품도 귀여운 게 좋았다.

“여학생이 좋아하는 캐릭터 필통 있잖아요?”
“같은 반 남자 얘들이 진짜 많이 놀렸어요. 남자가 왜 이런 걸 쓰냐고요.”

뭐가 이상했던 걸까?
난 그냥 내가 좋아하는 걸 쓸 뿐인데…

“나중에는 저보고 오카마(オカマ)라고 놀렸어요.”
“왜 그렇게 부르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옮긴이 도움말
  • 란도셀(ランドセル): 가죽으로 만든 초등학생 국민 가방이다. 기원은 군용 백팩으로 네덜란드 란셀(ransel)에서 이름이 유래된다. 상당히 고가인데 초등학교(소학교) 입학을 축하하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다. 남자아이에게는 검정색, 여자아이에게는 빨간색을 선물하는 게 일반적이다.
  • 오카마(オカマ): 일반적으로 여장 남자를 일컫고 동성애자의 의미를 포함한다.
  • 오네에(オネエ): 젊은 여성을 친밀하게 부르는 말로 우리나라로 치자면 '언니' 정도. 여장을 하진 않지만 언행이 여성스러운 남자를 일컫는다.

놀리는 줄 알았지만 웃어야 한다

TV를 보다 보면 오카마나 오네에라 불리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 사람들과 같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왕따가 되는 건 싫었는지 누가 와서 오카마라고 놀리면, ‘그래, 나는 오카마다!’라며 웃어넘기곤 했어요.” (옮긴이: 효고현 사투리로)
“관서(関西) 사람다운 대답이네요. (웃음)
“그래도 속으로는 분한 마음이 있었어요.”
“학교에선 웃고 넘어갔는데, 집에 와선 부모님 몰래 울곤 했어요.”

난 오카마가 아니야.
그럼 나는 대체 뭘까?
중학생이 될 무렵, 그 의문에 대한 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 무렵 TV에 하루나 아이(はるな愛)씨나 츠바키 아야나(椿姫彩菜)씨, 사토우 카요(佐藤かよ)씨가 나왔었어요.”
“그녀들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나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혹시 나도 그런 건가? 하면서요.”

그렇게 자각을 하고 나니 학교에서 가쿠란(学ラン)을 입는 게 너무 싫었다.

옮긴이 도움말
  • 하루나 아이(はるな愛): 일본의 트랜스젠더로 탤런트, 가수, 배우, 사업가, 유튜버로 폭넓게 활동하고 있다.
  • 츠바키 아야나(椿姫彩菜):일본의 트랜스젠더로 모델,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 '저 남고 나왔어요(わたし、男子校出身です。)'가 만화 단행본으로 나오기도 했다.
  • 사토우 카요(佐藤かよ): 일본의 트랜스젠더로 패션모델, 탤런트를 하다 최근에는 게이머로도 활동 중이다.
  • 가쿠란(学ラン): 가쿠세이(학생)의 '학', 오란다(네덜란드)의 '란'이 합쳐진 이름으로 학생복을 의미한다.

오히려 당당하게 나서기로 했다

왜 내 몸에 남자 성기가 있는 거야

어쩌면 나는 성 동일성 장애(性同一性障害, gender identity disorder)일지도 몰라.
그렇게 자각한 후에도 친구에게 일부러 커밍아웃하진 않았다.

“유치원 때부터 중학교까지 함께 자란 친구거든요.”
“제가 세일러 문 놀이를 좋아하고, 남자아이를 좋아하는 것도 모두 알고 있었어요.”
“저를 남자나 여자로 생각한 게 아니라, 제 존재 그대로를 인정해줬다고 생각해요.”
“친구를 믿는다고 나 할까, 나를 이해할 거라는 자신감 같은 게 있었어요.”
“그래서 특별히 커밍아웃하진 않았어요.”

한번은 친구에게 마음을 보인 적이 있었다.

“좋아하는 남학생에게 고백했어요.”
“그랬더니 ‘남자끼리 왜 이래!’ 그러더군요.”
“솔직히 마음이 상했어요. 난 역시 남자구나… 라면서”
“저는 여자의 마음에서 그 사람을 좋아한 건데, 상대는 저를 남자로 보는 게 너무 슬펐어요.”

“다른 남학생은 제게 징그럽다고 한 적도 있어요.”
“그럴 때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도 난 이뤄질 수 없어’, ‘왜 내겐 남자 성기가 달린 걸까’라며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화장을 해보라고 권해준 친구가 있었다.

“중학생 때 부터는 외출할 때 화장을 했어요.”
“머리는 짧았고 옷은 유니섹스 스타일이었는데, 화장을 할 때만큼은 나답게 산다는 느낌에 너무 좋았어요.”

옮긴이 도움말
  • 성 동일성 장애(性同一性障害, gender identity disorder): 자신의 정신적인 성(gender)과 생물학적인 성(sex)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현상이다. 성별 불쾌감, 성별 위화감, 성 정체성 장애라고 불리기도 한다.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줄곧 학급 대표를 했던 까닭은

이후에도 놀림당하는 일은 종종 있었다.

“화장실에 갔더니 선배들이 ‘오카마가 있는데?’라면서 둘러싸더군요.”
“‘진짜 달린 거 맞아?’라며 옷을 벗긴 적도 있었어요.”

“체육 시간에 수영할 때는 남학생들 사이에서 옷을 갈아입는 게 너무 싫었어요.”
“하지만 그런 것만 빼면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너무 좋아서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던 것 같아요.”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는 학생 시절을 만끽하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인지, 눈에 띄지 않게 숨어지내기보다 적극적으로 앞에 나서려고 노력을 했다.

“중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줄곧 반장을 도맡아 했어요.”
“내가 자신 있게 나서다 보면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나를 받아들여 줄 거라 생각했거든요.”
“심지어 남자 탁구부에 들어가서 지역 대회에서 우승한 적도 있어요.”

그렇다고 자신의 모습을 100% 드러낼 수 있던 건 아니었다.

“다소 무리일 거란 생각은 했어요.”
“오카마 티가 너무 나면, 친구나 선생님 중에서도 싫은 표정을 하는 사람이 있거든요.”
“나 자신을 숨기면서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는지, 은연중에 제 모습이 드러난 거죠.”


눈물의 커밍아웃

인생은 한 번뿐이니까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어머니가 늘 하시던 말씀 때문이었으리라.

“엄마는 정말 기가 센 분이셨어요.”
“반면 엄청 자상하기도 했죠.”

“언제나 ‘인생은 한 번뿐이니까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라’고 말하곤 했어요.”
“공부하라거나, 학교 가라는 말은 들은 적이 없어요.”
“늘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해줬어요.”
“정말 감사할 따름이죠.”

그랬던 어머니가 아버지와 이혼하고, 집을 나가게 되었다.
그때가 중학교 2학년, 한참 어머니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춘기였다.

“정말 충격이었어요.”
“그때는 제가 아직 어떤 사람인지 갈피를 못 잡고 혼란스럽기만 한 때였거든요.”

어머니가 떠나고, 아버지와 할머니와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러던 중에 키는 점점 커지고, 몸은 점점 남자답게 변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성 동일성 장애에 대해 인터넷에 찾아보았다.
성별 적합 수술을 비롯한 다양한 치료 방법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 문제에 대해 학교 선생님과 상담을 했고, 다행히 전문가를 소개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치료를 위한 클리닉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여자로 살고 싶다

하루라도 빨리, 남성화를 멈추고 싶다.
그래서 고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께 사실을 털어놓았다.

“엄마와 둘이서 장을 보고 오는 길이었어요.”
“엄마 집에서 말하려고 했죠.”
“하지만 말이 잘 안 나오더라고요.”
“2시간 넘게 울기만 했어요.”

“솔직하게 말하면 다시는 엄마를 만나지 못할 거란 생각도 했어요.”
“나중에 엄마가 말해주는데, 그때는 제가 사람을 죽였다고 생각했대요.(웃음)

“엄마가 ‘천천히 말해도 돼’라며 저를 다독인 후에야 겨우 입을 뗄 수 있었습니다.”
“여자로 살고 싶다고 말했더니 조금은 그런 낌새를 눈치채고 있었다고 하시더군요.”

“그리고는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손주 보긴 다 틀렸네.’라고요.”

그 말을 들으니 너무 죄송해서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부작용을 염려하시면서 건강에 이상이 없는지 걱정하셨어요.”

어머니는 치료를 반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당신의 아이가 어렵게 한 고백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시는 듯했다.


나의 행복이냐, 부모님의 행복이냐

부모님을 힘들게 한 건 다름 아닌 나

어머니에게 커밍아웃한 다음 날, 아버지는 나를 급히 깨워 이렇게 말했다.

“어서 일어나.”
“엄마가 손목을 그었대”

아버지는 병원으로 갔고, 나는 학교에 보내졌다.

“너무 놀란 나머지… 1교시부터 6교시까지 계속 울고만 있었어요.”
“저 때문에 엄마도, 아빠도 힘들어하는 걸 생각하니 저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어요.”
“엄마는 이런 나를 낳은 게 자기 잘못이라 생각한 것 같아요.”

어머니가 안정을 되찾은 후, 둘은 함께 정신과 상담을 받기로 했다.
미성년이 치료를 받으려면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이혼했고, 친권은 아버지에게 있었다.

“이제 아빠에게 말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말할 날짜도 정해두었죠.”

“그런데 말하기 하루 전날 아버지가 라인(LINE)에서 친구 추가된 거예요.”
“그때 제 프로필은 여장한 사진이었거든요.”

“아빠는 친구 추가되자마자 ‘너, 이게 뭐냐?’ 하시더군요.”
“‘어떻게 된 일인지 얘기 좀 해봐’ 하셔서 그날 모두 말해야 했습니다.”
“아빠는 ‘난 이해를 못 하겠어’하시고는 그 후로 말이 없었어요.”

“사실 아빠에게 말하기 전에 할머니께 먼저 털어놓았었어요.”
“할머니는 ‘성 동일성 장애라니, 혹시 기분 탓인 건 아니니?’라며 몇 번이나 되묻곤 하셨죠.”

커밍아웃 후 남몰래 흐르던 아버지의 눈물

그로부터 2주가 넘도록 대화는커녕 눈도 마주칠 수 없었다.
집안은 그야말로 쥐 죽은 듯 무거운 분위기로 가라앉아 있었다.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도 할머니와 나, 그리고 아버지는 서로 말이 없었다.

“의사 선생님이 부작용에 관해 설명해주셨어요.”
“그리고 아버지는 호르몬 치료 동의서에 싸인을 했어요.”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버지는 말했다.

“모든 짐을 혼자 지려 하지 마”

“아빠도 뉴 하프(ニューハーフ)인 분에게 이야기를 듣고 성별 적합 수술에 대해 알아본 것 같았어요.”
“나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려 했다는 게 정말 고맙고 기뻤어요.”

나중에 할머니가 말하길 평소에는 눈물이 없던 아버지가 커밍아웃 이후에 한없이 울었다고 했다.

“나 때문에 그렇게까지 힘들어하시다니…“
“지금은 두 분 다 저를 이해하고 있지만, 어쩌면 남자아이로 남는 게 더 좋았을까 생각하곤 해요.”

“물론 수술한 걸 후회하진 않아요.”
“하지만 제 행복보다 부모님의 행복을 생각하면…“
“이젠 아이를 낳을 수도 없고, 건강하게 낳아준 몸에 칼을 대기도 했고…“
“정말 죄송하단 생각밖에 들지 않아요.”

“가끔 엄마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모두 낳았던 거야’라고 말해주세요.”
“그렇게까지 마음을 써 주다니”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옮긴이 도움말
  • 뉴 하프(ニューハーフ): 남성으로 태어났으나 인위적으로 여성처럼 행동하며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사람을 말한다. 최근에는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어 일반직에서 활동하기도 한다. 게이보이, 시스터보이, 블루보이, 오카마, 미스터 레이디, 뉴 하프, 오네에 등으로 부르는 방법이 변해왔다.

패션은 나만의 자기표현 방법

가장 나다운 모습을 찾기 위한 여정

19살부터 호르몬 치료를 시작했다.
이제부턴 여성으로 살아가기로 마음을 굳힌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곱게 화장하고 여성복 차림으로 외출하다가 아버지를 만났다.

“예쁘게 차려입고 어디 가는 거니?”

별것 아닌 그 말이 너무 좋았고, 그렇게 말해주는 아버지가 고마웠다.

‘예쁘게 차려입고’.

그 말은 여자로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여성복을 입고 있는 제가 가장 나답다고 생각했거든요.”
“패션은 자기표현의 한 방법이니까요.”

“예전의 저는 나 자신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셈이죠.”
“남자 옷도, 여자 옷도, 자신 있게 입을 수 없었거든요.”

고등학생 때는 휴일에 가발에 화장하고 여자 옷을 입었다.
여자 친구들과 쇼핑도 했다.
어쩌다 속옷이 필요하면 인터넷으로 구입하기도 했다.

여성으로 사회에 나가고 싶다

하지만 집에서는 모르게 한 행동이었다.

“집에 가기 전에는 화장을 지우고, 옷을 갈아입었어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 이런 확신이 생겼다.

“패션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나다운 옷을 입는 것만으로도 성격이 밝아지거든요.”
“졸업하면 패션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요.”

대학생 때 치료를 계속했던 이유는 취업할 때 여성으로 사회생활을 하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았다.

“아르바이트할 때였어요.”
“제가 남자란 걸 알고 손님이 조롱한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어떻게든 졸업 전에 성별 적합 수술을 받아야 했어요.”
“수술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해야 했을 때가 가장 힘든 시기였던 것 같아요.”

덕분에 수술을 무사히 받을 수 있었고, 지금은 나다운 모습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여전히 치마를 입는 데는 거부감이 있다.

“허리 아래로 바람이 통하는 게 아직은 뭔가 불안하거든요. (웃음)
“그래도 언젠가는 입어 보고 싶어요.”

다음 편에 계속

번역하는 개발자
드립치는 어그로꾼 / 잡담과 스포를 담당하고 혼잣말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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