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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면에 반말 좀 쓰겠습니다

초면에 반말 좀 쓰겠습니다

회신이 늦어지면 재확인을 요청하거나, 플랜 A, B를 미리 준비해두고 확인이 되는대로 결정된 내용으로 교체하는 요령도 필요합니다.

대상 독자: 도서 번역 초심자
이 포스트는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한 '번역 FAQ - IT 도서 번역가에게 묻다'를 텍스트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영상은 50분의 강의 시간에 맞추느라 일부 내용이 편집되었는데 텍스트 버전은 영상에서 잘린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50분 전체 강의 내용을 소개 1개와 FAQ 8개의 포스트로 나눠서 올립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번역 공정이나 역할과 책임 등을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세스나 R&R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IT 업계 종사자가 아닌 분은 해당 내용을 건너뛰셔도 됩니다.


How 번역 팁

이제까지 번역할 때 공정과 협업 방법을 살펴봤는데요.
이번엔 좀 더 가벼운 내용으로 번역 팁 몇 가지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원서 내용에 오류가 있을 때 어떻게 하나요? 라는 질문이 있었는데요.
저자도 사람인지라 원서 자체에 오류가 남아있기도 합니다. 다만 이미 정오표에 반영된 경우도 있으니 원서 사이트의 정오표는 수시로 확인하는 게 좋아요.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번역자와 저자 간의 직접 컨택은 피하는 게 관례입니다, 처음에는 원서의 오류를 편집자를 통해 전달해주세요. 편집자가 한국 출판사, 한국 에이전시를 통해 오류 확인을 요청하면 해외 에이전시, 해외 출판사를 통해 저자에게 전달됩니다. 이 과정이 빠르면 1주, 늦으면 두어 달이 걸릴 수 있는데요.
회신이 늦어지면 재확인을 요청하거나, 플랜 A, B를 미리 준비해두고 확인이 되는대로 결정된 내용으로 교체하는 요령도 필요합니다.

간혹 저자가 SNS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직접 소통하는 걸 더 편하게 생각한다면 에이전시를 통하지 않고 직접 소통하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 다만 원칙적으로는 정해진 채널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게 뒤탈이 없으니, 상황에 맞춰서 적절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만드시면 되겠습니다. 참고로 일본 저자나 출판사는 싫은 걸 싫다고 드러내서 말하지 않습니다. 소통을 할 때는 오고 가는 말의 뉘앙스를 잘 캐치해서 서로에게 폐가 되지 않게 선을 지키는 게 중요합니다.

다음은 원서는 누가 정하는지, 어떻게 고르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나눌 수 있는데요. 출판사다 주도해서 원서를 정하는 탑 다운 방식과 번역자가 주도해서 원서를 정하는 바텀업 방식이 있습니다.

출판사가 주도할 때는 출판사의 라인업 계획에 따라 주제를 정하고, 해외 출판사의 신간 소식을 모니터링하면서 정하게 됩니다. 선정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돈이 되는 책을 고르게 되죠. 번역서는 엄연한 상품이라는 점을 잊지 마세요. 간혹 출판사의 전략 상 돈이 되지 않는 책이라도 라인업을 다변화시키거나, 출판사만의 색깔을 유지하기 위해 책을 고르기도 합니다.

원서를 정했다면 출판권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 입찰을 해야 하는데요. 만약 여러분이 출판사에서 번역 의뢰를 받았다면 그때는 판권을 확보한 상태라고 보시면 됩니다. 종종 출판사가 원서의 판권을 사기 전에 번역자에게 도서 검토를 의뢰하기도 하는데요. 이때는 출판사가 그 번역자의 번역 품질을 믿고 있단 얘기고, 판권 확보에 성공하면 그 번역자에게 우선적으로 번역 의뢰를 하기도 합니다. 반면 원서 검토를 의뢰했던 출판사가 입찰에 실패하기도 하는데요. 그 판권을 확보한 다른 출판사로부터 번역 의뢰를 받는 경우도 간혹 있습니다.

이번엔 번역자가 원서를 고르는 바텀업 방식을 알아봅시다. 이런 경우는 보통 번역자가 관심 있거나 잘하는 분야로 책을 고르죠. 만약 그 책이 신간이 아니라면 출판사가 그 책에 대해 잘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럴 땐 번역자가 출판사에 그 책을 번역하자고 제안해야 합니다.

이 과정은 우리가 회사에서 제안서를 쓰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이 책이 왜 좋은지, 대상 독자가 누구인지, 예상되는 판매 부수가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내가 이 책을 번역할 능력이 충분하다는 걸 어필하는 거죠. 대부분의 출판사는 1년 365일 저자와 역자를 상시 모집합니다. 홈페이지에 보면 신청 양식이 있어요. 번역하고 싶은 책과 자신의 번역 수준을 소개하면서 상담을 받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번역할 때 반말을 쓰나요? 존댓말을 쓰나요?

처음 번역을 하다 보면 이런 궁금증이 생길 수 있는데요. 사실 이 질문은 저도 초보 때 했던 질문이기도 합니다. 요즘은 경험이 쌓여서 ‘이건 반말로 갈게요. 존댓말로 갈게요.’하고 제가 먼저 제안합니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원서의 언어에 따라 문체가 좌우되기도 합니다. 원서가 영어로 되어 있으면 평어가 자연스럽고요. 반면 원서가 일본어면 존중어가 자연스러울 수 있어요. 영어 원서는 지시형이 많은데, 일어 원서는 권유형이 많거든요. 이건 해당 언어가 속한 문화나 저자의 태도에서 기인한다고 봅니다.

앞에서 번역을 할 때는 저자로 빙의해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고 했는데요. 저자의 감정 상태를 모방할 수 있으면 문체는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됩니다. 단, 어떤 문체를 쓰더라도 한국어로 옮길 때는 짧은 문장으로 담백하게 쓰는 게 좋은데요. 장황하게 늘어 쓰면 전달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몇 마디 단어로 표현하기 힘든 개념은 말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데요. 이때도 여러 문장을 쓰되, 각각은 짧은 호흡으로 읽을 수 있게 정리하길 권합니다.

번역이 잘된 책은 ‘이 책이 번역서인 줄 몰랐다’라는 칭찬을 듣게 됩니다. 옆 사람에게 말로 설명하듯 짧은 호흡으로 간결하게 생각을 옮겨보세요. 만약 문체를 정했다면 반드시 편집자와 교감을 해두셔야 합니다. 종종 편집자가 표현이 장황하다며 임의로 존중어를 평어로 뒤집는 경우가 있는데요. 원래 존중어로 쓰인 글을 무리하게 줄이면 친절했던 느낌이 사라지고, 지시하는 듯한 기분이 들면서 읽을 때 짜증이 날 수 있습니다.

특히 문장을 쓸 때는 소리 내어 읽듯이 리듬감을 맞추는 게 좋은데 무리하게 평어로 고쳐 쓰다 보면 흐름에 맞춰 쓴 단어가 무용지물이 되면서 단어 선택부터 다시 해야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때는 문장을 완전히 새로 써야 하죠. 북 디자인이 고정 레이아웃인 경우, 글이 넘치면 페이지가 깨질 수 있는데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무리하게 존중어로 된 걸 평어로 고치는 건 피하는 게 좋습니다.

사실 일본서는 사용하는 단어 수가 우리와 비슷하기 때문에 평어를 존중어를 늘리는 게 아니라면 고정 레이아웃에서 텍스트가 넘치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결국 문체는 저자의 의도를 살리면서, 독자가 편안하게 읽을 수 있게 문체로 골라쓰면 된다는 얘깁니다.

번역하면서 어려운 점이 바로 직역이냐 의역이냐인데요.결론부터 얘기하면 의역해야 합니다.
독자는 번역서를 보는 것이지 원서를 읽는 게 아니거든요. 굳이 원서의 흔적을 남길 필요가 없죠. 오히려 원서가 궁금하지 않을 정도로 내용을 잘 옮긴 게 좋은 번역서입니다.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흔히 겪는 실수가 문법이나 표현에 지나치게 집착해서 의미와 단어를 1:1로 매칭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원서를 읽었을 때 머릿속에 일단 이미지가 그려지면 사전적인 단어의 뜻이나 사용하는 단어 개수는 문제 되지 않습니다. 머릿속의 그림을 말하듯이 옮겨 쓰면 되거든요. 사전은 참고일 뿐 반드시 사전 상의 뜻으로 치환하려 하지 마세요. 애당초 단어는 언어마다 담을 수 있는 정보량이 다릅니다.

단, 업계에서 사용하는 주요 키워드라면 정확한 정의나 출처를 검색할 수 있도록 영어 단어를 반드시 벙행 표기해두세요. 일본서라면 동음 이의어로 헛갈릴 수 있는 단어에 한자를 병행 표기해두는 게 좋습니다. 번역한 단어가 발음은 같지만 뜻이 다른 경우가 생각보다 많거든요. 얘를 들어 수학 용어 중에서 일본의 ‘정수’는 우리나라의 ‘정수’와 의미가 다릅니다. 읽으면서 뭔가 의미가 이상하다 싶으면 꼭 한자를 함께 찾아보고 병행 표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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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의 삽화는 그래픽 레코딩 기법으로 그린 스케치 노트입니다. 그래픽 레코딩이 궁금하다면 ZZOM의 신간 '처음 배우는 그래픽 레코딩'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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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5 영상을 보시려면 '초면에 반말 좀 쓰겠습니다'를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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