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자의 말

사실 나는 플래닝 포커를 잘 쓰지 못했다

플래닝 포커(Planning Poker)는 애자일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를 할 때 작업량을 추정하는 도구입니다. 칸반을 하든 스크럼을 하든 애자일을 처음 입문할 때면 꼭 한 번은 실습하게 되는 툴이죠.

제가 입문할 때는 변변한 플래닝 포커가 없어 종이를 오려서 썼었는데 이런 걸로 작업량이 추정이 될까 반신반의했고 프로젝트 내내 스토리 포인트며, 벨로시티며 쉽게 체감되지 않는 각종 지표에 잘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당시에 플래닝 포커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던 건 그걸 사용하는 목적이 정확한 작업량을 파악하기보다는 팀원의 생각을 확인하고 차이를 조율하는 과정에 있다는 걸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플래닝 포커는 간단해 보였지만 많은 철학이 숨어 있었다

수년 전부터 ‘출근했더니 스크럼 마스터가 된 건에 관하여’라는 스크럼 입문서를 번역하면서 애자일에 관한 잘못된 선입관을 고치게 되었습니다. 첫 애자일 프로젝트를 실패했던 탓에 트라우마로 힘들었지만 이제는 진지하게 마주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서였는지 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진면목을 발견하고 과거의 실패를 되짚어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관심이 간 부분은 플래닝 포커였는데 보잘것없어 보이는 종이 조각에 많은 고민과 철학이 깃든 것을 새삼 깨닫고 나니 단순히 실습 교육용 교보재로 놔두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도구를 어떻게 하면 더 잘 활용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도구의 장점을 더 끌어낼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면서 퍼즐 조각을 하나씩 맞춰갔습니다.

정적인 포커페이스보다 신나는 몸짓과 소통으로

가장 먼저 손을 보고 싶었던 건 ‘트럼프’ 카드의 제약이었습니다. ‘포커페이스’라는 말이 있듯이 조용하고 조심스럽게 진행되는 추정 과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주의력이 떨어지고 피로감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동적인 요소를 가미하고 자기 생각을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방법을 넣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타격감을 줄 수 있는 ‘화투’를 생각하게 되었죠.

초심자에게는 더 직관적으로, 숙련자에게는 더 공격적으로

플래닝 포커 경험자를 대상으로 여러 의견을 수집하다 보니 추정할 때 사용하는 수열의 크기가 체감되지 않는다거나, 숙련자가 정한 걸 따라가게 된다거나, 스토리 포인트 대신 소요일이나 소요시간 등으로 더 구체화된 단위를 쓴다는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 기저에는 ‘그래서 플래닝 포커는 한계가 있어’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는데 기존의 방식으로 쓸 수 있으면서도 사용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확장을 쉽게 할 수 있으면 좋겠고 생각했습니다. 왠지 플래닝 포커가 억울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수년간의 실험을 통해 기존의 플래닝 포커를 리팩터링 하다 보니 초심자에게는 더 직관적이고, 숙련자에게는 더 공격적으로 쓸 수 있는 설계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을 54장의 카드에 녹여 넣어 ‘플래닝 화투’를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활용할지 벌써 궁금합니다

다른 애자일 기법이나 도구가 그러하듯이 플래닝 화투도 최소한의 사용법과 기본적인 구조만 설명하고 사용자 스스로가 확장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여지를 만들어 두었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어떻게 활용하게 될까요? 흥미로운 접근 방식이나 활용 사례가 있다면 다른 사람도 알 수 있게 해시 태그를 달아서 공유해 주세요. 제 고민과 노력이 여러분의 현장에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PlanningHwatu #플래닝화투

  • 신상재
  • YouTube: 번역하는개발자 / Facebook: sangjae.shin
  • 삼성SDS / 1인 출판 프로젝트 ZZOM

부산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졸업 후 삼성SDS에서 소프트웨어 아키텍트와 품질 기술 업무를 하고 있다. 역서로 『출근했더니 스크럼 마스터가 된 건에 관하여』, 『처음 배우는 그래픽 레코딩』, 『사고법 도감』, 『딥러닝을 위한 수학』, 『비즈니스 프레임워크 도감』, 『인공지능을 위한 수학』, 『1억배 빠른 양자 컴퓨터가 온다』, 『스프링 철저 입문』, 『클라우드 인프라와 API의 구조』, 『TCP/IP 쉽게, 더 쉽게』, 『네트워크 엔지니어의 교과서』, 『XCODE로 배우는 코코아 프로그래밍』, 『OBJECTIVE C』가 있다.